상식
기별
조선 시대 기별청(奇別廳)에서 비롯했다.
국가에서 발행하는 신문(조보)를 제작하던 곳이다.
필사에 의존했던 터라 지방에선 열흘 치 또는 한 달 분량을 묶어 받아 보았다.
도착이 늦어지면 "기별청에서 왜 소식이 없지?"하다 "왜 기별이 없지?"로 축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