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민족 반역자가 되기까지-
(50년 만에 만난 선배)
*선생님 스스로 민족 반역자라고 그러시는데 그게 일제시대의 교직경력과 관련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먼저 그 때 교사가 되기까지 학생 시절의 말씀부터 듣고 싶습니다.
서당도 다니셨다고......
서당도 1년인지 2년인지 다니고,
그 다음에 정규 보통학교가 아닌 동네에 있던 삼락학원에서 4년을 마치고, 그 담 외갓집 근처에 있었던 공립보통학교를 4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녀서 졸업한 뒤에 한 2년 쯤 쉬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들어갔어요.
저 항승이란 데가 함경남도 도청 소재지거든요.
거기 사립학교인 함흥영생중학교라는 저 기독교 계통의 학교예요.
국민학교 졸업하던 해는 쉬고, 그 다음해 입학시험을 봤는데 떨어지고 그 다음해 역시 또 떨어졌는데, 그 때는 보결편입이란게 있었어요.
그래 학교 졸업한 뒤 2년이 지났기 때문에 또 한 해 넘어가면 나이도 너무 많아서 힘들 것 같아서 내 선친께서 보결 시험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하셨습니다.
마침 영생 학교의 한 학생이 가까이 있어서 그 학생한테 우리 선친께서 부탁해가지고 시험 준비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몇 학년에 들어가셨습니까?
그 때 광주학생사건 무렵이라 전국적으로 학생 운동이 있지 않았어요?
그 학생이 대구사범에 다니던 학생인데,
거기서 문제가 있어 가지고 쫓겨난 학생이예요.
그래서 뒤를 따라 다니던 기관원 때문에 공부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지요.
그런데 몇 해를 쉬다가 마침 함흥 영생에 그런 보결 시험이 있다는 걸 알고 응시해서 4학년에 들어가 제가 만났을 때는 5학년 학생이던 때지요.
1, 2 학년은 보결 시험이 없어서 3학년 시험을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 3학년 책을 빌려다가 시험 준비를 하느라고 하지만 그게 제대로 되겠어요?
그러면서 원서도 냈고 시험도 보고 그랬지요.
그래 어느 정도 봤는지를 알고 있을 게 아니겠어요?
김남식의 아버지(우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