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선생님께선 창평하고 대동소이하게 생활하신 겁니까?
아무 일 없이.
그 때까지는 아이들은 그렇게 밖에 나가서 일을 돕거나 아직 그렇지는 않았고,
신문에 뭐 전과가 나고 그러쟎아요.
교장만 일본인인데 그 사람들은 어떤 전과가 나면 보도두 크게 되지만 아주 정말 몹시 기뻐하고,
그 싱가폴 함락 됐을 때나 남경 같은 데가 함락 되었다거나 어디가 어떻게 됐다 그러면 우리 벌써 중학교 때 부터도 행렬, 죠찡이라는 초롱들고 하는 행렬,
그 다음에 기 흔들면서 하는 행렬을 많이 해왔지만,
여해진에 간 뒤에도 대동아 전쟁이 시작되면서 그런 전과가 나면 또 행렬하고 그랬지요.
그래 조간 같은 신문이 배달되면 아침에 직원실에 가서 보고 그러는데 이 한국 직원들은 느낌이 어떤가 그걸 감시하는 것 처럼 늘 그래요.
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데 같이 좋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 표정을 할 수도 없고.
그리고 창평에 맨 처음 부임했을 때는,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시작하는 날 부터 '시사여행원'을 내가지고 방학이 끝난 날 까지자기 볼일을 보고 그러다가,
여해진에 온 첫 해쯤에도 그러다가 그 다음 부터는 지금도 왜정 때 배운 걸 당국에서 잘 쓰고 그러지만 방학이 수업이 없다는 말이지 무슨 직원들이 맘대로 다니고 그런 날이 아니라는 걸 아주 강력하게 강조했어요.
방학이 되면 집에 와 있다가 가고 그랬는데,
어느 겨울은 그렇게 공문이 왔다고 하면서 못가게 해요.
직원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그 때 부터 말루 그렇게 반항을 못하고 가지 못한다고 그러니까 가지 못하는 수 밖에 없으면서 그냥 할 일도 없으면서 학교에 나오고 그런 생활을 했어요.
그 여해진에 처음 부임할 때도 내가 몇년도에 어디 졸업한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교장이 일본인 야마네라는 사람인데.
아주 반갑게 맞이해 주었어요.
담임은 아니었지만 선생님이었어요.
그러니까 사이가 나쁜 그런 일이 없었는데 당국의 지시도 있어서 그랬겠지만 압박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면서 좀 사이가 좋지 못했지요.
특별하게 뭐 그런 일을 없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