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3-22

광래 2012. 6. 25. 16:11

집으로 돌아오니 식구들은 다행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밖에 나갔던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었는데 마침 돌아왔기 때문이다.

 

(지프 탄 미군이 처남을 찌르고 가다)

 

차츰 인민군이 내려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리 시청엔 공고문이 나붙었다.

 

무슨 일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몇 시까지 어디로 와 달라고 해서 장선생과 같이 거기를 갔다.

 

갔더니 어떤 집이었는데 동적부 비슷한 것을 주면서 연령, 몇년 생부터 몇년 생까지 적으라는 것이다.

 

우리는 소집영장을 만드는 기초작업임을 얼른 알 수 있었다.

 

시키는대로 우리가 그 일을 하며 하루가 지났을 때 하늘에 또 적기가 나타났다.

 

7월15일 쯤이었으리라.

 

그 땐 집안에 있었는데, 3-4대의 비행기가 이리시를 빙빙 돌다가 되돌아 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간단한 비행기 소동으로 끝났지만 이리시는 온통 우왕좌왕 하는 사람으로 가득찬 채 매우 복잡하였다.

 

또 우린 떠나야 했다.

 

처남 댁 식구들을 포함해서 모두 20여 명이나 되었다.

 

우리는 무조건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거기서 전주까지 80리 라고 했던가.

 

한 30리를 지났을 때 벌써 인민군이 뒤에 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뒤에 쫓기는 형편으로 가는데 전주를 지나서 저녁 때 전주 다음역인 신 무슨 역에 닿았다.

 

가는 도중에 우리는 장정들을 가득 실은 열차를 보았는데, 그들은 다름 아닌 앞에서 뽑았던 징병자들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게 줄 영장을 만들던 작업을 하루동안 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런데 남쪽으로 내려가는 피난민 대부분이 그 지방 사람들이 아니라 북쪽에서 넘어 온 우리 같은 사람들이란 것을 알았다.

 

남쪽 사람들은 사실 피난 갈 일이 없었을 것이다.

 

다음 날 새벽에 내린 곳은 남원이었다.

 

7월17일이나 18일 것이다.

 

가져 온 솥으로 밥을 해 먹은 후, 우리는 더 내려가는 차를 탔다.

 

이번에는 차 꼭대기에 모두 올라 탔다.

 

차표가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그냥 타고 본 그 자리들도 여유가 전혀없이 빽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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