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무소유 법정스님!!!

광래 2011. 2. 1. 17:50

 

무 소 유   법 정 스 님


산문집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法頂)스님이 11일 오후 1시51분께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법랍 55세. 세수 78세.


법정 스님은 입적하기전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며 “어리석은 탓으로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며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 겠다”는 유언이다.


아울러 법정스님은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는 말도 남겼다고 전했다.


1956년 출가한 스님은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역경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등 몇 차례 소임을 맡은 것을 빼면 종단 행정에는 관여하지 않고 명리와는 담을 쌓은 수행자의 본분을 지켜왔다.

 

실제로 법정스님은 산문집 '무소유'에 실은 1971년에 쓴 '미리 쓰는 유서'라는 글에서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한 술 더 떠 거창한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그토록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이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라고 썼다.


겉으로만 수행자 차림을 하고 속으로는 돈이나 명예를 생각한다면 그는 누가 보아도 결코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불자가 아니라 가사 입은 도둑입니다.


2007년 10월 길상사 정기법회에서 수행 풍토의 타락을 비판한 스님의 일갈이다.


번거롭고 부질없고 많은 사람들에게 수고만 끼치는 일체의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라.


무슨 제왕이라고 세상 떠들썩하게 장례식을 치르고,  

관과 수의도 만들 필요 없다.


내가 입던 승복 그대로 입혀서. 내가 즐겨 눕던 작은 대나무 침상에 뉘여 그대로 화장해 달라.


나 죽은 다음에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며 시줏돈 걷어서 거창한 탑 같은 것 세우지 말고,

어떤 비본질적인 행위로도 죽은 뒤의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라."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여 달라.


스님은 잿빛 가사에 어울리는 청빈과 끊임없는 수행을 강조해 왔고, 그래서 더 맑고 향기로운 삶이었다.


법정 스님은 불교계의 현실 참여가 전무하다 시피 했던 ‘씨알의소리’ 편집위원으로 씨알의 소리가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도록 활기를 불어넣었고, 1970년대에 장준하, 함석헌 등과 함께 불교계를 대표해 '민주수호국민협의회' (출처 : 사회 깨우던 '죽비소리)' 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민주화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또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과도 깊은 교분을 나누었다.


1994년부터는 순수 시민운동단체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마음과 삶을 맑히는 운동을 펼치며, 고독한 수행 생활을 해왔다.


1997년엔 서울 성북동에 길상사를 창건했고 2005년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내려가 무소유의 삶을 살면서 가끔씩 길상사에서 법문을 해왔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무소유', '영혼의 모음', '서 있는 사람들', '말과 침묵', '산방한담', '텅빈 충만', '물소리 바람소리', '버리고 떠나기', '인도 기행',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그물에 걸지 않는 바람처럼','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아름다운 마무리’, ‘일기일회’ ,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등의 책을 남겼다.


번역서로는 '깨달음의 거울(禪家龜鑑)', '진리의 말씀(法句經)', '불타 석가모니', '숫타니파타', 因緣이야기', '신역 화엄경',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스승을 찾아서' 등이 있다.


'무소유' 법정스님 주요 연표


▲1932년 10월 8일 = 전남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 출생


▲1954년 = 통영 미래사에서 효봉 선사를 은사로 입산 출가


▲1956년 7월 15일 = 효봉 선사를 은사로 사미계 수계


▲1959년 3월 15일 =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 수계


▲1959년 4월 15일 =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명봉화상을 강주로 대교과 졸업, 이후 지리산     쌍계사와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 선원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


▲1960∼1961년 =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동참


▲1967년 동국역경원 편찬부장


▲1972년 첫 저서 '영혼의 모음' 출간


▲1973년 불교신문사 논설위원, 주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유신 철폐 개헌 서명운동 참여


▲1975년 10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충격, 송광사 불일암으로 돌아감


▲1976년 대표 저서인 '무소유' 출간


▲1984∼1987년 송광사 수련원 원장


▲1985년 경전공부 모임 법사


▲1987∼1990년 보조사상연구원 원장


▲1992년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고 홀로 수행정진


▲1993년 8월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준비위원회 발족


▲1993년 10월 10일 프랑스 최초의 한국 사찰인 파리 길상사 개원


▲1994년 1월 1일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창립


▲1994년 3월 26일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창립 기념 첫 대중법문을 서울, 부산, 대구, 전주 등지에서 하며 지부 발족


▲1995년 김영한(법명 길상화)씨의 대원각 시주를 받아들여 송광사 말사 '대법사'로 조계종에 등록


▲1997년 1월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 취임


▲1997년 12월 14일 대법사를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바꾸고 창건 법회


▲1998년 2월 24일 명동성당 축석 100돌 기념 초청 강연


▲2003년 10월 '맑고 향기롭게' 창립 10주년 기념 강연, 파리 길상사 개원 10주년 기념 법문


▲2003년 12월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 회주에서 스스로 물러남


▲2010년 3월 11일 길상사에서 법랍 55세, 세수 78세로 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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