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공부하는 1교시, 2교시수업시간 인데도 그런데 관계없이 그냥 가서 10리 쯤 돼도 김매주어야 할 때가 많아요.
그런 요청이있으면 얘들 데리고 가서 김매고.
아, 그리고 저 송탄유, 비행기에 특별히 쓰는 윤활유가 부족하니까 솔에서 나오는 기름 같은 것으로 대용할 수 있다고 하니까 주로 산촌에선 낫이나 적당한 기구를 갖고 산에 가서 그걸 캐다 바치기도 했어요.
= 교육활동은 안하셨군요, 노동만 하시고?
그렇지요.
시간이 있어서 가르치기도 했겠지만 주로 그런 노력 동원에 나갔지요.
= 그 때 전쟁이 끝날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하셨나요?
못했지요.
단천은 함경남도에서 바닷가로 맨 끝이예요.
청진도 가깝고 그러쟎아요?
청진에 소련군이 폭격도 하고 상륙도 했다든가 그런 보도가 나오고 그래서 내개 하는 생각이
그 소련군이 바닷쪽으로 지나가면 우리는 그냥 갇히거나 하는 게 아닌가 그랬고.
또 다른 사람들은 여러가지 생각을 했을지 모르지만 뭐 종전이라든가 무슨 항복이라든가
이런 것은 더욱 생각 못했지요.
일본 사람들이 군대를 교육하는데 저 '옥쇄(玉碎)"라는,
일본 말로 '교꾸사이'라고 그러지요.
우리가 듣기를 저 북해도 북쪽에 '아쯔'라는 섬이 있어요.
거기서 옥쇄했다는 것을 아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그랬었요.
그게 일.노전쟁 뒤에 받은 섬인지 하여튼 그러한 섬에 가서 싸우다가 전체 옥쇄했다든가,
그 때 생각이 전장에 나가면 다 죽고 포로라든가 그런 말은 영국인이나 미국인이나 이런 사람들이 포로로 우리나라 어디 와 있다 그런 정도의 이야기를 듣지만 일본 사람이 무슨 포로가 되는 법은 없고 그저 최후의 경우에는 목숨을 바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