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3-26

광래 2012. 6. 27. 15:58

그렇게 지내면서 "무궁화 아름다운 삼천리 강산...." 하는 경찰가를 불렀던것이 지금도 새삼스럽다.

 

그렇지만 그 모습은 참 거지행렬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길 한 달,

 

훈련이 끝나면 일선근처로 배치되어 작전을 돕는 일을 하게 된다고 들었다.

 

군인처럼 실전은 아니고 주변에서 도와 주는 것 같았다.

 

벌써 배치되어 갔다가 잠깐 휴가를 얻어선지 와가지고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들은 그런 일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얼마가 지나서야 나는 아는 사람을 통해서 면회 신청을 한 우리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훈련은 대나무로 총 메는 연습도 하다가 맨 나중에는 실총을 잠깐 잡아 보았는데 우리는 그것을 자세히 배울 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일요일엔 그 고된 훈련을 쉬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 쉬는 날이라고 생각하며 밥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전원 집합하라는 것이었다.

 

윗도리를 다 벗어서 소대별로 놓게 하고 밖으로 줄서서 나갔는데 70리나 되는 다대포까지 대원 전원이 구보로 뛰어야 한다는 것이다.

 

1000명 쯤 되던 우리들은 다대포 까지 갔다가 거기서 점심을 먹고 다시 부산으로 70리 구보를 하고 돌아오니까 모두 녹초가 되고 말았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이제 자는 일만 남은 걸로 알고 안심하고 있는데 또 소집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시 웃도리를 벗고 부산 시내를 한 바퀴 빙 돈 뒤에 정렬하였다.

 

훈련 책임자가 그 때 이렇게 말했다.

 

"이제까지 일요일은 쉬었는데 지금부터는 일요일도 없이  매일 이렇게 훈련을 할 것이다.

 

앞으로 훈련을 견뎌 낼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은 손들라"고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으나 나는 정직하게 손을 들었다.

 

정말 앞으로 그렇게 한다면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을 든 사람은 불과 다섯명 밖에 안 되었다.

 

그러자 그 지휘자는 즉시 그냥 나가라는 거였다.

 

나는 낙오는 하지 않았지만 피난민 수용소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당시는 인천상륙 직후였고, 전세가  달라질테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은 필요치 않다고 하여 누구는 나가라 그럴 수 없어서 그 날 그렇게 달리면서도 낙오하는 사람들 이름을 다 적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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