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 한편, 수석부위원장하던 강기철 선생을 비롯해서 주요 간부가 5월 17일과 18일에 검거 되었다. 기억나는 일 중에서 우리 초등에 崔濬文 선생의 平壤師範 동창에 관한 일화가 하나 있다. 그는 치안본부 간부로 있었는데 최준문선생에게 비밀리에 "어서 도피하라"며 알려주었다는 사실이다. .. 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2012.08.06
4-24 (한국교원노동조합에서 5.16 지지성명을 준비하다) 군사쿠테타 소식은 1961년 5월16일 아침에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학교가는 도중에 우연히 들었던 것 같다. 그 날부터 오후 5시가 통행금지 시간이었다. 처음 며칠 간 그랬다. 그 5.16 (혹은 17일)이었던가 오후 5시 이전에 몇 사람이 신동영 .. 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2012.08.04
4-23 그런 모임에서 내가 "지금까지 전근을 간다거나 담임을 맡는다거나 할 때, 서로간에 금품이 왔다갔다하는 일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그런 일들이 고쳐질 것 같습니까?" 하고 질문을 하자 장학사는 "이제부터는 잘 되지 않겠어요?"라고 대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정년퇴임 할 때까지 .. 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2012.08.04
4-22 그래도 우리는 1961년 5월 20일에 좀 더 강력한 조직이 되도록 하는 회의를 예정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벌써 33년이나 흘렀다. (4. 19직후 민주당 정권에서 지속된 교육계의 자유당시대) 그런데 1961년 4월1일자로 나는 예정에 없던 전근을 다시 하였다. 자유당시절의 행태는 민주당 정권 때.. 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2012.08.04
4-21 다음 날은 바로 국회에서 노동조합 금지규정에 교원을 넣느냐 빼느냐 하는 안건을 다루기로 한 날이었다. 우리는 "곽태진(郭太振)물러나라!"고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한 덕분인지 몰라도 최종적으로는 우리의 의견이 관철되어 금지규정에 교원은 넣지못했다. 그런 후에 우리는 초등 조직.. 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2012.08.04
4-20 물론 그 자리에 교장도 있었다. 다음 날, 서울고등학교에서 대회가 끝난 뒤에 우리 학교의 교장 정창흠은 '4. 19혁명완수'를 하자고 다른 직원들에 앞장서서 가두행진을 하였다. 4.19가 난 뒤에 그 교장이 우리를 보면 무서워한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좀 경계하고 그런 것은 사실이었다. 뿐.. 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2012.07.31
4-19 일부의 평가대로 4. 19학생혁명을 결정적으로 잉태키켰다는 사상계(思想界) 를 통해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함석헌(咸錫憲)선생님이 개천절인 그해 10월3일 서울고등학교에서 강연이 있었다. (대한교련)이 주최한 4. 19 혁명완수교육자대회(革命完遂敎育者大會)에 시민대표로 나오신 것이.. 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2012.07.31
4-18 그 때 앞장서서 반대논지를 편 사람 가운데 하나가 (노태우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하던) 정원식(鄭元植) 이었다. 따라서 (한국교원노동조합)이 합법이냐, 비합법이냐가 쟁점이 되어 있었고, 이른바 합법성투쟁과 소송도 제기된 상태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교원노동조합)이 처음에 .. 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2012.07.31
4-17 을지로나 종로 모임이 자라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지나가던 사람도 손을 들고 가고 싶으면 가는 풍경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부산 등지의 지방에서도 올라온 대표가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정말 비조직적이었고 그래서 더욱 순수하고 자유롭던 창립대회였다. 따라서 그 날 처.. 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2012.07.29
4-16 (계훈제 선생과 한국교원노동조합의 태동) 그러던 어느 날 조회 때, 동학년 교사였던 함성광 선생은 내게 계훈제(桂勳悌)선생을 만나고 온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아직 교원노조가 발족하기 전인데 을지로 어디선가 계훈제 선생이 첫 발의를 했다는 것이다. 함성광(咸星洸)선생은 직원회.. 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2012.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