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 그 당시 직원회의 랄까 이런게 아침이나 저녁에 꼭 있었나요? 여해진에선 작아서 그런지 직원 조회, 종례는 별로 없었고 '어린이 조회'는 거의 날마다 있었는데 항상 일장기를 걸어 놓고 거기다 경례를 하구. = 요새 하는 것과 비슷합니까? 그렇지요. 경례를 어떤 식으로 하나요? 그 때 부.. 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2012.03.23
2-23 그리고 여해진에 있을 땐데 지금은 서울시 전체가 모여서 무슨 연구회를 하고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군 교육연구 발표회'라는게 있어서 각 학교에다 봄, 가을로 하던가 1년에 한 번 그렇게 지정되면 군내의 교사들이 모여서 같이 연구 수업을 하고 그러지요. 그런데 여해진에 있을 때 44.. 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2012.03.23
2-22 처음 38원이라고 하는 것은 '촉탁교원'의 초급이예요. 그땐 사범학교를 졸업하면 42원인가 됐어요. 여해진에 와서 '판임관(判任官)' 이라고 해서 '판임관'이 되어야 '훈도'가 되는 거지요. 그러니까 사범학교를 졸업하면 발령을 '훈도'로 받는 거지요. 나는 아마 2년 지나서야 그 발령을 받았.. 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2012.03.23
2-21 간이 학교도 몇 해 있다가 국민학교로 바뀌는 땐데, 내가 발령을 받은 때는 황곡 국민학교였어요. =그래도 선생님은 한 분이군요. 그 다음 해방되던 해에 황곡 교장이 정식으로 왔어요. 1학년과 2학년이 함께 수업하다가 해방되던 해에 3학년 까지 있었어요. = 해방도 거기서 맞이 하셨지요.. 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2012.03.23
2-20 (간이학교의 '유지계') =참, 이 여해진 학교에 몇년 계셨습니까? 44년 까지 있었어요. 41년도에 와서 44년 까지 만 3년 쯤 되지요. 그리고 44년 그 해에 결혼했어요. 그 결혼한 것과 근무와 관계가 있는데 그 때 간이 학교라고 있었어요. 아까 창평에도 간이 학교가 한 20리 떨어진 그 산골에 있.. 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2012.03.23
2-19 =선생님 뭐 그러실 분이 아니... 하하하, 여해진이 바닷가여서 참 좋았어요. 운동장에서 바닷가 까지의 직선 거리가 100m 쯤 되는데 여름엔 체육시간에 바닷가에 가서 헤엄치고 들어 오고. =백사장도 있고요? 그렇지요. 그 동쪽 바다가 참 좋았고 그래서 여기 월남해서도 바닷가에 있기를 원.. 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2012.03.23
2-18 =그럼 선생님께선 창평하고 대동소이하게 생활하신 겁니까? 아무 일 없이. 그 때까지는 아이들은 그렇게 밖에 나가서 일을 돕거나 아직 그렇지는 않았고, 신문에 뭐 전과가 나고 그러쟎아요. 교장만 일본인인데 그 사람들은 어떤 전과가 나면 보도두 크게 되지만 아주 정말 몹시 기뻐하고.. 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2012.03.13
2-17 (방학 중에 출근하고, 모래 땅에 콩을 심고) =그럼 전쟁 기간중 이니까 웃기관에서 교사들에게 경계 태세를 어떻게 하고, 마음을 어떻게 하고 전달된 어떤 얘기는 없었나요? 그렇죠. 아, 그러니까 교장과 직원이 합쳐서 다섯 명이었는데 어린이 조희 같은 것이 날마다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2012.03.13
2-16 그 때는 일본 각 학교에다 학교 선전과 소개를 하며 모집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일본 학교에다 그것을 보내면 관심있는 사람들이 응해서 1년동안 강습을 받고 그리고 교직에 나가고. 예를 들면, 여기 사범학교에서 그 일본의 고등학교, 아니 중학교가 되겠지요. 거기다 광고문 같은 것.. 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2012.03.13
2-15 = 그 때 첫 급료는 얼마였습니까? 아마 38원인가 했어요. 벌써 쌀 사는 것도 '야미'라고 하는 암거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직은 혼자 하숙비로 10원 정도를 내고 그러면 되니까 뭐 그리 큰 문제는 아니지만 일본이 중일 전쟁 시작하면서 부터는 값있는 돈이 아니었어요. = 그런데 일본인 .. 쓰레기를 주우며시대의 넝마를 주우 2012.03.13